천주교 합덕성당 (예수·마리아·요셉의 성가정 성당)

1. 시원에서 합덕성당 신축까지(1890~1929)

이 곳 내포에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 시작한 것은 1784~85년 여사울 출신 이존창(루도비꼬)에 의해서였다.
1791년 신해박해를 시작으로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박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내포하는 조선에서 가장 많은 교우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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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천주교의 시원 여사울의 옛 모습과 현재>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는 천주교는 가장 왕성한 선교지였던 내포를 위해 1890년 두 개의 본당을 설립한다.
바로 간양골(공세리 본당의 전신)과 양촌 본당(합덕 본당의 전신)이다.

1890년 양촌 본당 초대주임으로 부임한 퀴를리에 신부는 한옥성당과 사제관을 짓고 박해로 와해된 공동체 재건에 나선다.
이후 1899년에 보다 견고한 선교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하여 합덕리 현 위치로 본당을 이전하면서 합덕 본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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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양촌 본당의 배치도와 현 양촌 공소 전경>

1899년 본당이 합덕으로 이전할 당시에는 한옥식의 성당과 사제관이었다. 그러다가 1921년부터 제 7대 주임한 페랭 신부에 의해 현재의 성당이 건축되었다.
새 성당은 1929년 10월 9일 원 아드리아노 주교에 의해 축성되어 오늘에 이른다.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두 개의 종탑이 특징을 이루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한다.
1998년 충청남도 문화재(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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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99년 이주한 합덕성당 전경과 배치도
3,4)1929년 새 성당 봉헌식 외부와 내부 사진

2.페랭 신부의 활동(1921~1950)

제 7대 주임 페랭 신부는 1921년에 부임한 이후 1950년 8월 14일 인민군에 의해 납치될 때까지 30년 동안 합덕 본당에서 사목하였다.

재임기 주요 활동으로는 우선 박해기에 다블뤼 주교관으로 사용된 신리 사적지를 1927년에 매입하고,1946년 6월 4일에는 솔뫼 사적지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기념비를 제막하는 등 본당 지역 내 교회 사적지를 마련하여 현대 당진지역 성지 순례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둘째로 백신부는 군 복무시절 위생병으로서 익힌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합덕과 인근의 주민들에게 근대적인 의료 시혜를 베풀었다. 고약이나 안약, 그 밖의 약품들을 직접 만들거나 가져다가 사제관 한 켠에 시약소를 마련하여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고 한다.

셋째로 성영회(聖靈會)라는 이름으로 이미 박해시기부터 고아들을 양육하여 보살피던 사업이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는데, 백신부는 1949년에 이르러 성당 내에 보육원 설립인가를 얻어 <소화보육원>을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그 밖에도 공소의 활성화와 공소 회장의 양성, 안나회와 카톨릭 청년회의 설립, 성당 신축(1929), 1928년과 1939년에 각각 예산본당과 당진 본당의 분할 등 합덕본당의 정착과 성장의 기틀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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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25전쟁과 합덕 본당의 순교자

1950년 6.25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합덕 본당은 커다란 시련을 겪게 된다.
당해 8월 14일 고해성사를 집전 중이던 백문필(페랭, 필립보)신부가 인민군에 의해 피납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총회장 윤복수(레이몬드), 복사 송상원(요한)이 함께 피납되어 끌려갔다.
이들은 대전으로 이송되었고, 그 곳에서 처형되어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이는 천주 공경하기를 죽기까지 고백하였던 박해시기 신앙의 정신이 근대의 성직자와 평신도들에게 유산과도 같이 고스란히 물려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4.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제-수도자 배출

순교의 열성이 합덕 사람들의 면면으로 이어져 신앙의 결실을 맺어갔다.
그 하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제와 수도자를 배출하였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합덕 본당 출신 성직자는 33명에 이르고, 수도자는 80명을 넘어선다.
그 외에도 합덕에 뿌리를 두고 배출된 사제와 수도자들을 포함한다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그동안 한국의 가톨릭교회가 그 구조상 성직자와 수도자가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면 가장 많은 교회 지도자를 낸 합덕 본당이 한국 가톨릭교회 성장의 일익을 담당해 왔음에 틀림이 없다.


5.충청도와 중부 지역의 모본당(母本當)

또 다른 신앙의 결실은 충청도와 대전교구의 거의 모든 본당이 합덕 성당을 그 모태로 한다는 것이다.
현재 대전교구 127개 본당의 모체가 바로 합덕성당이라고 할 수 있다.


<본당분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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